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키노 비스콘티 (문단 편집) == 기타 == 그는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밀라노 공국]]을 지배하며 르네상스 문화를 연 명문 '[[비스콘티]]' [[백작]]위를 가진 명문 귀족이었다.[* [[한니발 렉터]]가 상당한 귀족 취미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원작 소설에서는 그가 비스콘티가의 피를 이어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그가 렉터의 모델이라는 풍문도 있다.] 그라차노 비스콘티 공작 주세페(1879-1941)[* 1914-1919년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회장이었다.]의 3남으로 태어났다. 가문의 수장인 공작 작위는 맏형, 작은형과 그 후손 계통으로 이어진 데 비해, 루키노는 가문의 수장이 아니어서 백작 작위만 갖게 됐다. 때문에 다른 이탈리아 감독들이 국제적 명성을 얻고도 [[영어]]를 못해 쩔쩔맨 것과는 달리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등 수개국어에 능했고 [[파시스트]] 정권에 반발해 --귀족의 후예가--[* 부르주아 계층이 사회주의자가 되는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했으면서도 절대로 귀족 취미를 버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촬영장에서도 사람들은 그를 감독이 아닌 백작으로 불렀다. 공산당 전적이 증명하듯 그는 착취와 자본적 지배에 대해 반반심이 있었다. 불운한 하층민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영화인 흔들리는 대지에서는 비스콘티의 그런 면을 잘 드러난다. 그런 비스콘티조차 유럽과 이탈리아에서 불었던 급진적인 운동과 공산주의 분파들의 야욕 다툼 때문에 점점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2차 대전 때는 파시즘 저항 활동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스파이 활동을 하던 여자 배우의 도움으로 구명되었다. 해당 배우는 비스콘티가 자신에게 특별히 감사 인사를 하지도 않고 이후로도 자신을 무시했다며 분노했다. 젊은 시절부터 사교계의 총아에다 뛰어난 미적감각으로 이름이 높아 [[루이뷔통]]이 [[듣보잡]]이던 시절부터 뷔통의 가방만 들고다녔으며[* 모두들 뷔통의 로고가 비스콘티의 이니셜을 박아넣은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루이 뷔통('''L'''ouis '''V'''uitton)이나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나 둘 다 이니셜이 '''LV'''다. 비스콘티 정도의 재력이면 개인 이니셜을 박은 가방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기도 했고.] 30살 무렵 [[장 르누아르]]의 연출 보조로 영화계에 발을 딛었는데 그를 르느와르에게 소개시킨 사람은 [[샤넬]]의 창립자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다. 한편 어지간히 디테일에 신경을 쓴 모양인지, [[움베르토 에코]]에 따르면[* <셰틀랜드의 가마우지~> 참고. '리얼리티'에 신경쓰는 광고업자들을 그에 비유했다.] 영화에 보석함이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설령 그 보석함을 열어보는 장면이 없다 할지라도 그 보석함에 보석을, 그것도 [[불가리]]의 최고급 보석으로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레오파드 후반부의 무도회 시퀀스에서는 실제 시칠리아 귀족들을 엑스트라로 섭외했다. [[양성애자]]로 당당하게 [[커밍아웃]] 했는데 사실 부친도 양성애자였다고... 때문에 영화를 찍을 때에는 여배우는 물론이고 남자배우와도 종종 염문설이 돌곤 했는데 그중에는 [[http://ja.wikipedia.org/wiki/%E3%83%AB%E3%82%AD%E3%83%8E%E3%83%BB%E3%83%B4%E3%82%A3%E3%82%B9%E3%82%B3%E3%83%B3%E3%83%86%E3%82%A3|심지어]] [[알랭 들롱]]도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연인은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헬무트 베르거]]이며 이외에도 감독, 배우, 사진가 등등 여러 사람과 연인 관계가 되었었다. 그가 이탈리아의 귀족이나 왕족 중 일부와도 그런 사이였다는 풍문도 들려온다. 2회 이상 기용한 배우로는 [[버트 랭카스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알랭 들롱]], [[더크 보가드]], 그리고 [[헬무트 베르거]] 등이 있다. 비스콘티는 뇌졸중을 겪다가 사망했는데 죽을 때까지도 담배를 즐겼다. 얼마나 담배를 많이 폈으면 하루에 120개비를 폈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도 담배를 계속 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순수의 시대]]가 비스콘티 감독의 귀족 영화에 영향 받은 작품이다. 스콜세지는 레오파드의 화질 복원 작업에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비스콘티가 어린 시절 머물던 코모 호수의 별장은 현재 공공에 개방되었는데 미국 가수 [[그웬 스테파니]]의 노래 《Cool》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쓰였다. [[https://youtu.be/TGwZ7MNtBFU|영상]] 비스콘티가 50년대에 여름 별장 용도로 구매한 [[토스카나]]의 성 카스텔로 디 카졸레(Castello di Casole)는 현재 호텔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분류:이탈리아 영화 감독]][[분류:1906년 출생]][[분류:1976년 사망]][[분류:밀라노 출신 인물]][[분류:이탈리아의 양성애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